세상을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서는 희생이, 아니 그건 슬픈 것이지만, 그래도 약간 정도라면 희생이 필요하지. 역사가 원한다면……. 그렇게 책임을 돌릴 대상이 뚜렷한 덕분으로 그는 두개골로 자신의 왕좌를 엮을 수 있었다. 그가 한때 그토록 증오했던 민중의 실오라기로 엮은 왕관이 다만 재료와 조준점만 약간 바꾸어 결국에는 같은 결과로 되었는데도 그는 결코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그에게, 그렇게 순수하고 정의로운 그에게 잘못이 있다구요? 차라리 왕족들이 피해자라고 말해보지 그래요? 그러나 그 누구도 피해자는 아니었노라고 감히 나는 단언할 수 있다.
분명하게도 그는 순수한 사람이었다. 그렇게 올곧고 바른 사람은 지금도 흔치 않다. 그래서 모두가 그라면 분명히 잘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의지하였다. 하지만 어째서 단 한 명도 간과하지 않은 이가 없었던 것일까, 다른 길을 볼 줄 모르는 사람이야말로 대의를 품었을 때 제일 위험하다는 사실을…….
가끔은 다른 길도 좀 보면서 새로운 풀이 돋았는지도 보고, 몰랐던 열매가 있었는지도 좀 알아야죠. 그렇게 말하면 웃으면서 아니, 그래도 주어진 길은 다 가야 하는 게 최선이 아니겠니. 그렇게 말할 법한 사람이었고 실제로 그러했다. 그것이 순수한 선의임을 알았기 때문에 누구도 그 고지식함을 질책하지 않았다. 고작 놀림감 정도로 그칠 뿐이었다. 어쩌면 그때 제대로 박살을 내어버려야 했을지도 모르는 일일 텐데. 아니 하지만 지금 와서 그런 생각을 해봤자 어차피 헛된 생각일 뿐일 것이다. 그 결과로 우리는 지금…….
군중의 아우성, 술렁거림…. 대격변 속에서도 오합지졸이던 민중을 하나로 단결시킬만한 힘과 지성을 가졌던 그, 태양을 등지고서 진심 어린 개혁을 부르짖는 그는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자신의 신념으로 의지를 지니고서 움직이는 사람은 누구라도 멋지다. 그중에서도 그는 남다르게 멋있었다. 모든 결핍을 극복하고 대중의 단상 앞에 설 자격을 쟁취해냈으니까. 그럼에도 사욕을 보이지 않았으니까. 그것이 너무나도 찬란해 보였는데, 다시 돌이켜보면 어쩌면 그 찬란함에는 동경만이 전부였는지도 모른다. 그것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사심이 들어간 판단은, 내가 지녔던 불우한 어린 시절을 그 역시 겪었다는 동질감으로 덧씌워진 환상이 아니었을까. 그 환상이 여태까지 또 앞으로도 지속될 수 있는 것이었다면 차라리 영영 좋았을 터인데, 그 아쉬움에 대한 증거로 또다시 내 눈앞에는 독재자가 되고만 남자의 미소가 허상으로 아른거리고 있다.
그 미소는 그가 다시 미소 짓지 않는다면 평생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웃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 안의 최후의 미소는 오로지 순수했던 그 근원을 품은 것으로 남아있으면 좋겠다. 만약 그가 오늘 다시 웃는다면 그는 내 마지막 소망조차 산산하게 부수고 마는 최악의 인물로써 남게 되겠지. 그러한 사소한 것이 모든 악행에 우선할 수 있을 정도로…그렇다, 최종적으로는 아직 포장을 벗기지 않은 배신감이 판도라의 상자 속 비밀마냥 영원히 봉인된 채로 존재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그것을 실감하느니 차라리 평생을 이기적인 아이로 불릴래요.’
그렇게 내 절망이 되고 실망이 된 한 때의 희망이 아우성과 술렁거림을 한껏 휘감고 오늘 다시 군중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턱이 날아가고 만 불우한 다비드, 쇠락하고 만 한 때의 영웅, 과거에 그랬듯 영광을 품고 떠났으면 좋았을 것을, 오늘 그는 자신이 휘두른 칼날로 자신의 목을 베러 왔다. 불가피함을 주장했던 당신은 이런 최후도 불가피하다고 말할 건가요? 도무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없어 표정마저 제대로 보이지 않는 이 거리에서 내가 볼 수 있는 것은 한 인물의 절단 뿐이다. 걱정 말아요, 칼날 떨어지는 모습은 제대로 볼 수 있을 테니까…….
그렇게 5년을 환상으로 살았던 그가 무너졌다. 단출하고 재빠른 작별, 아마도 내 앞으로 남긴 유언은 없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