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살가죽을 벗겨서 신발을 만든다면 그 어디든 갈 수 있을 것 같고, 두 눈을 집어삼키면 당신이 보는 모든 것을 볼 수 있을 것만 같다. 다만 그럴 눈이 그대에게 없는 것이 아쉬울 뿐이었다. 신체에 대한 윤리를 오로지 소유욕과 효용성의 관점으로 전환시킨다면 나는 도덕에 방해 받을 일 없이 당신의 몸을 취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내가 생각하는 세계에서만큼은 그런 윤리가 통하지 않음을 이제부터 직접 보여주려 한다.
당신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내게 실망감을 안겨주었다. 특별히 아꼈던 연장이라고 해서 처분이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역시 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이 분명할 것이다. 물론 당신이 내게 품고있던 기대가 그 정도로 지대하지는 않았음을 알고있다. 어쩌면 그래서 더욱 실망감이 컸을지도 모른다. 동등함을 표방하는 관계, 수평선을 이루고 서있다고 생각하게 만들어 놓았음에도 그 속임수에 발을 담근 한편 쉬이 몸을 빠뜨리지는 않았던 당신은 언제부터인지 줄곧 그런 식으로 어중간했다. 예측하기 어렵다고 해서 즐거움이 식지 않는 것이 아니고 복종한다고 해서 만족감이 충족되는 것 또한 아니다. 당신은 그 어느 쪽도 아니었기에 나는 더 온전히 지배하고 손에 넣을 수 있는 방법을 궁리해야만 했다. 실망은 여기에서부터 비롯되었다. 수많은 가능성을 생각해 놓고 있다고 하더라도 내가 원하는 대로 풀리지 않았을 때의 분노는 저급하면서도 강력함을 부정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생각한다면 어쩌면 이 실망은 비단 일방적인 관계를 향하는 것이 아닌 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당장 지금은 내면의 외침에 따라 처분을 내릴 준비를 해야만 했다.
앞서 이미 말했듯 특별히 애착을 지닌 연장이었다고 하더라도 결국 낡아서 버려지는 처분만은 다르지 않다. 하지만 그것은 오로지 제일 눈에 잘 띄는 단면만큼을 강조한 결말일 뿐이다. 죽음이라는 단계에 이르기 전 까지 우리는 서로 공유해야 할 것을 너무나도 많이 남겨두고 있었다. 그 전, 공유를 위해선 고통을 겪어야만 한다. 죽음을 영원의 전초단계로 남겨두기 위해 감수해야 할 고통은 너무도 크지만 나는 당신이 저항하지 못하리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실행을 망설이지 않는다.
(FOR 토마토님 / 얀데레 쇼고 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