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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ound

search (미완성)

저는 모르겠습니다. 제가 당신을 어디까지 들여다 볼 수 있는지.
이드의 말은 무심한 듯 했지만 동시에 정곡을 찌르고 들어왔다. 그가 솔직하게 말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목적을 파악할 수 없는 가감없음은, 솔직히 두려운 것이었다. 그래서 말을 아끼며 태연한 척 발걸음을 옮겼지만 실은 곧장 그에게 반문하고 싶었다. 나는 알 수가 없다, 내가 너를 얼마나 알고싶어하는지, 라고.
어쩌면 서로에 대해 자만하고있었는지도 모른다. 신체도 마음도 서로가 다 파악하고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사실 뒤돌아 곰곰이 생각해보면 의문이 떠오를 때가 있기 마련이었다. 그래서 이따금씩 사람은 서로를 떠보려고 하는지 모른다. 얼마 전에 우리에게 있었던 우스운 일화처럼.




“점심은 챙기셨습니까?”
“아니, 신경 쓰지 않아도 괜찮아.”


여느때와 다르지 않은 날, 이드는 평소처럼 오후 안부를 물었다. 자신을 향한 물음에 눈길 돌리는 척도 않고서 기지리는 손에 들고있는 책에만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이드는 그 대답에 대꾸하지 않고 조용히 서가 안으로 들어왔다, 탑처럼 쌓인 고서적 낱장마다 베어든 낡은 냄새와 서늘함이 좁고 조용한 공간을 떠다니고 있었다. 이드는 등을 보이고 선 기지리 옆에 나란히 섰다. 집히는 대로 책을 펴들었지만 시선은 다른 곳을 향하고 있었다. 주변에는 신경쓰지 않은 채 묵묵히 책을 읽어내려가던 기지리도 이내 자신을 향하는 기척에 고개를 들었다. 이드의 눈은 기지기가 책을 넘기던 그 손 끝을 향하고 있었다.


“무슨 할 말이라도 있나?”


의문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건낸 기지리의 질문에 말로 대답하는 대신 이드는 손 끝에서 시선을 돌리고 기지리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묻는 말에는 답이 없이 돌아오는 영문 모를 행동에 기지리는 눈을 치떴다.


“이드…….”


기지리가 입을 떼기 무섭게 이드는 기지리의 어깨를 낚아채듯이 붙잡았다. 그러고서는 채 다물지 못한 입에 자신의 입술을 갖다대었다. 입 안으로 밀고 들어오는 혀와 함께 밀어붙이는 몸을 밀어낼 수 없었다. 이드의 옷깃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가, 손이 풀려 손가락 끝으로만 옷깃을 붙잡고 있다가, 이내 감싸쥐듯이 팔을 붙잡았다. 잠시간의 시간이 흐르고 난 뒤에야 서로의 입술이 떨어졌다. 하지만 몸만큼은 여전히 서로를 안고 있어서 몹시 가까운 거리에서 두 사람의 눈은 서로를 맞보고 있었다.
낌새도 없는 막무가내같은 행위에 기지리가 무어라고 하기도 전에 이드는 다시 몸을 밀어붙였다. 이번에는 한쪽 팔론 허리를 감싸고선 한쪽 손으로 어깨를 밀며 몸을 바닥으로 넘어뜨렸다. 끝나지 않는 당혹감의 연속에 기지리는 반사적으로 입을 열었다.


“뭐하는 짓이야……?”
“알고 싶었던 것이 있었습니다.”
“……대체 이런 걸로 뭘 알 수 있다는 거지.”


돌아온 대답만으로는 곧장 그 행동의 의미를 파악할 수 없어서 기지리는 김이 새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자신을 넘어뜨린 위에서 긴 머리를 늘어뜨리고서 얼굴을 쳐다보기만 하는 상대가 뻔뻔하게만 느껴졌다. 적어도 이곳에서 정착해 살기 시작한지 10년은 넘었는데,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 드러나기 시작하는 느낌이었다. 지금도…. 오히려 단순히 형제같은 사이였을 때에는 이런 일은 있은 적이 없었는데.
자신을 넘어뜨릴 때 예상했던 최악의 상황의 기척도 없자 기지리는 되려 이상하다는 듯이 이드를 쳐다보았다. 기지리의 안대 위를 향하던 이드의 손이 방황하듯이 망설이다가 도로 바닥을 짚었다. 그러고서는 자세를 고쳐 누워있던 기지리와 마주치던 눈을 떨어뜨렸다.


“이제는 됐습니다. 알고 싶었던 것은 이제 없으니까요.”
“무슨 이야기지?”
“제 기혼은 이미 충족되었다는 이야깁니다.”


그게 대체 뭐야, 대답을 듣자마자 기지리는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던 말을 삼켰다.
기지리가 저도 모르게 주는 눈치에도 아랑곳 않고 이드는 몸을 일으켜세웠다. 바닥을 밟고서 일어난 이드는 기지리를 향해 손을 뻗었다. 지금까지의 비상식적인 행위와는 대조되는 신사적인 모습이었다. 기지리는 말 없이 그 손을 잡았다. 이드가 그 손을 붙잡고서 그를 일으키려는 찰나 기지리는 이드의 손을 확 잡아당겼다. 예기치 못한 돌발상황에 이드는 속절없이 도로 무너져 내려앉았다. 이번에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또 놀란 기색이 역력한 표정으로 자신의 몸위에 걸터앉아있는 상대방을 보며 기지리는 입을 열었다.


"거짓말이 많이 늘었구나, 이드."


영문 모를 엉뚱한 말만 던져놓고 가겠다니, 두고 볼 수 없지. 이렇게 말하고 싶은 것을 누른 채 기지리는 놀리듯이 말하는 동시에 이드와 눈을 마주쳤다. 언제나 냉정한 서로였지만 예외는 존재하는 법이었다. 특히 이런 경우는 예외 중 예외나 다름 없었다. "겉만 차린 말로 다 무마할 수 있었다고 생각했다면 오산이야." 상대방의 겉옷을 잡아끌듯이 붙잡은 기지리의 얼굴에는 웃음기가 맴돌고 있었다.


"예의를 알아야겠지."
"...무슨 처분을 내리실 겁니까."
"난 내가 아끼는 상대라고 해도, 감히 날 기만하려고 한다면 그냥 넘어가지는 않을거거든."


말을 맺음과 함께 기지리는 붙잡고있던 옷자락에 힘을 주었다. 이드의 고개가 바닥을 향해 내려앉았다. 그대로 기지리는 살짝 머리를 들고서 이드의 귓가에 속삭이듯 말을 건냈다.


"...솔직해지려면 지금 뿐이다."


그 한마디가 끝나기 무섭게 이드의 입술이 다시 기지리의 입술을 덮쳤다. 이번에는 기지리도 이런 흐름을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에 얽힘은 아까보다 더 자연스러웠다.
둘이 아직 입술을 떼지 않은 도중이었지만 이드의 손은 이미 기지리의 다리를 향하고 있었다. 날이 더워 옷을 걷어내면 바로 살갗이 드러나도록 가볍게 입은 차림새였기에, 이드의 손은 천 한겹만 사이에 두고 기지리의 허벅지 위를 붙잡고 있었다. 기어코 입술을 떼자 가느다란 실이 두 사람 사이에 이어져있다가 이내 끊어졌다. 차오르는 숨에 두사람 모두 붉어진 얼굴로 눈을 마주치고 있었다. 이드는 조용히 기지리의 얼굴을 향해 손을 뻗었다. 가느다란 손가락이 안대를 끌러내자 반가운 눈동자가 보였다. 가리고 있던 눈을 오래 드러내면 안된다는 사실에는 아랑곳 않고, 기지리조차도 그것에 별다른 거부를 드러내지 않고, 그저 온전한 두 눈을 서로가 마주보고 있었다. 이드가 얼굴을 가까이 하자 기지리는 눈을 감았다. 안대 대신 입술이 가볍게 눈꺼풀을 누르는 감각이 느껴졌다.
입술이 떨어질 때까지도 기지리의 허벅지에서 손은 떼지 않은 채였다. 도리어 허리를 받치던 한 손마저도 다른 쪽 허벅지를 붙들었다. 엄지손가락이 허벅지 안쪽을 가볍게 누르고 있었다.
  

"기지리님... 당신이 원하는 솔직함이 어떤 건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여기까지 와서 망설이나? 처음도 아닌 주제에."
"그런것은 아닙니다."


이드는 저도 모르게 무심코 입꼬리를 올렸다. 그리고는 확신했다. 이 사람은 직접 말하지 않으면 계속 모를 거라고. 그렇게 생각하며 두 손에 힘을 주었다.


"그럼 솔직함을 보여드릴 수 있겠다고 생각했을 뿐입니다."


그 한마디가 끝자마자 바로 이드는 몸을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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