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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derworld

my




그들은 우리를 사랑했다. 그들은 검을 든 자를 사랑했다. 그 검을 그들을 위해 쓰는 자들을 사랑했다. 그 결과로 우리는 사랑받았다. 이 이어짐을 끊어야 하는 때가 찾아오리라는 것을 나는 이미 무기를 들었을 때부터 알고 있었다.



언제나 혼자서만 사랑을 독차지 할 셈이라고, 구차한 된사람 놀이는 이제는 우습기만 하다고 말하던 그의 목소리가 여태껏 귓바퀴에 달라붙어있는 것 같았다. 고개를 돌릴 때마다 흩어지는 머리카락 한올 무게마저 무겁게 느껴질 정도로 부담감이 선명하게 현실로 다가오고 있었다. 하지만 질투인 양 포장했던 걱정 어린 만류의 말에도, 전신을 죄는 압박감 속에서도 더는 멈출 도리는 존재하지 않았다. 무기를 들어 맞서 싸우기를 시작했다면 그 끝은 무기를 버리는 것으로 내야만 한다.


‘말도 안돼, 희생으로 이루어지는 구원이라니. 있을 수가 없잖아, 사라져야 하는 사람이 존재하는데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는다니, 단 한 사람이라도…….’ 그 호소에 나는 반박할 말을 찾을 수 없었다. 아무 대꾸 없이 그를 등 뒤로 하고 떠났던 것은 나의 패배이다. 어쩌면 내가 사라지고 세상이 뒤바뀌어도 그에게는 용서받지 못할 지도 모른다. 그런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내게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사랑받던 ‘우리들’ 사이에서 무기 그 자체가 되는 ‘개인’ 으로……떠나는 것이 어리석은 내가 떠올리지 못했던 다른 답들 사이에서 고를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미안해, 사과는 내가 네 슬픔을 배반하지 않는 것으로 받아주기를 바래. 한번 결정한 일을 뒤엎고 무르는 일만은 없을 것이다. 어쩌면 후회할지도 모른다. 지극히 개인적인, 어렸던 소녀의 늦은 후회가 비를 만들어도 그 때에는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세상이 완성되어 있을 것이다.



문 모서리를 붙잡은 손은 이 순간을 아쉬워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어떤 모습으로 끝날지 모르는 자신의 미래를 한번 머릿속에 그려보았다. 이제는 나가야만 한다. 또 역시 누군가의 부름에 등돌린 채, 매정하게 느껴질 만큼 단호하게 촛대 위에서 흔들리는 불을 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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