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ound

梅雪

ShineRoute 2015. 7. 8. 02:12


눈으로 뒤덮인 산등성이를 오르는 남자는 눈에 띄는 차림새를 하고 있었다. 붉은 옷감 위를 덮은 하얀 짐승의 모피도 주변 풍경에 어울리도록 도와주기에는 모자람이 있었다. 그러나 튀는 행색이야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 그는 눈이 맺힌 나무 사이를 헤집으며 발길을 재촉했다.

산의 초입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매화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나무 하나하나마다 꽃이 있을 자리를 대신해 가지 위로 흰 눈이 드리워진 모습에 기지리는 빨랐던 발걸음을 늦추었다, 매화는 봄을 알리는 사자使者로 알고 있었는데, 한겨울을 버티는 데에도 아름다움을 연출하는 역할을 맡고 있는듯 했다. 하지만 모든 나무가 눈꽃에만 겉모습을 의존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추위에도 꿋꿋이 당장 피어 눈 속에서 빛나는 봉오리들도 있었다. 때를 잘못 타고 난 것인가, 아니면 기다림보다 일찍 고통을 견디고 태어나길 선택한 것일까. 일찍, 마치 그처럼?

자연스럽다는 듯이 이드를 떠올렸다는 사실에 기지리는 가지 위를 훑던 손을 내려놓았다. 그의 손길이 지나간 자리마다 매화 가지가 맨살을 드러내고 있었다. 방금까지는 하나의 새하얀 덩어리로 보였던 눈더미가 체온으로 녹아 사라진 것처럼 그가 겪었고 함께했던 인연은 모두 곁에 남지 못하고 먼저 떠난 이들이 되고 말았다. 상대방의 모습에, 생각에, 존재에 감탄하고 손을 뻗어도 결국 끝까지 손에 쥐고 있을 수 있었던 것은 무엇도 없었다. 끝이 없는 존재는 없다고들 하지만 기지리는 당장 자신의 끝을 예측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드와 함께했었을 때에는 그도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시작부터 너무 당연하게 곁에 존재해왔고, 또 비정상적인 흐름마저 함께 해왔기에, 그래서 더욱이 끝을 상상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낌새가 스치기도 전에 그는 이미 형체가 없는 존재가 되어 그의 곁을 떠나고 말았다.



"어째서인가? 그저 있었기에 붙잡아봤을 뿐이었는데…….“



숨을 내뱉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나온 한마디가 차가운 공중으로 흩어졌다. 흰 입김이 그림자처럼 그 한마디를 뒤따라 나왔다. 발걸음에 눈덩이가 부서지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그가 만약 지금도 내 곁에 함께 했더라면…어쩌면 또 무표정하게 감탄을 속으로 삼키는 그를 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아니라면 이 장소에 올 일조차 없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 이 길은 그의 유언을 따라가는 도중의 한 장면이 되었다. 되돌아가는 것도 없던 길로 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돌아가자. 대상 없는 말을 또다시 되뇌며 고개를 든 순간 콧잔등 위로 차가운 감촉이 느껴졌다. 구름이 밝게 낀 하늘 아래로 굵은 눈송이가 다시금 휘날리고 있었다. 마른 나뭇가지를 장식하고 이미 핀 꽃과는 함께 할 눈이 재차 쌓일 것이었다. 마치 모종의 대답과 같이 되돌아온 우연에 기지리는 표정을 풀었다. 서 있었던 자리에서 발을 떼자 커다란 신발 흔적이 남았다. 이젠 정말 돌아가야 하는 때다. 그래, 돌아가자, 우리가 시작했던 곳으로. 어깨에 두른 짐승의 털을 붙들고서 그는 매화나무 사이를 지나 다시 목적지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