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ound

의중

ShineRoute 2014. 9. 9. 17:31



밤이 깊었지만 잠들 수 없었다. 노곤함 속에 몸을 파묻은 채 가늘게 뜬 눈 틈으로 붉은 안광을 내비치는 자와 책을 덮은 채로 잠을 미루어둔 자가 있었다. 다람쥐굴같은 어둠 속에서 흐르는 침묵은 마치 몇세기 전의 그것과 같았다. 겪어본 적은 없지만 그럴 것이라고 추측할 수는 있었다. 이대로 잠들고 싶지 않다. 나는 이 밤 내내 당신과 내가 좋아하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비록 다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내 말을 들어주는 사람은 당신이 유일하니까. 이해한 양 너스레를 떠는 사람들과 당신은 무척이나 다름을 지금 이 밤, 나는 상기시켜주고 싶다.


본심은 보통 밤이 되어야 찾아온다는 사실은 이미 통설이 되어있었다. 낮 내내 몇겹이고 쓰고 있었던 페르소나를 전부 내려놓고 솔직해질 수 있는 시간, 편안함과 불안감이 동시에 엄습하는 시간, 그렇기에 실언도 고백도 쉽게 흘러나오기 마련이다. 하지만 당신은 실언조차도 하지 않는다. 나는 당신에게 들려주지 않은 이야기가 많다. 묻는다면 구태여 감출 생각은 없다. 그러나 당신은 묻는 일 조차도 없었다. 오히려 말하지 않는 것이 많은 것은 당신이었다. 내가 아니다. 

대화 없이도 타인을 파악할 수 있는 방법은 수없이 존재한다. 당신은 깁슨을 좋아한다. 특기와 취향이 일치하는 사람, 결코 가변적이고도 불규칙한 사람은 아니다. 파악하기 어려운 사람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속으로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는 직접 파헤치지 않으면 알 수 없다. 추측은 추측일 뿐이다. 당신은 내가 본인을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다고 생각하겠지. 그럼에도 내가 당신에 대해 더욱 많은 것을 알고싶어하는 것은 과연 내가 욕심이 많기 때문일까, 아니면 당신이 내 호기심에 불을 붙이는 사람이기 때문일까.

알고 싶은 것을 알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해왔다. 당신에게는 무엇을 해줘야 내가 당신의 모든 것을 알 수 있을까. 인간은 한 길 조차도 알 수 없다고들 한다. 그럼에도 나는 당신을 열 길보다도 더 깊이 알고 싶다. 당신 같은 사람은 내 길 위에 여태껏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밤 역시 잠에 들지 못하고 당신에게 말을 건다. 피곤한 몸을 의자에 기대어 허공을 바라보는 당신을 바라보며 대답을 기대하지 않는 말을 건넨다. 데카르트, 소크라테스, 벤담, 수많은 역사를 들먹이면 그 중 하나로 당신을 파악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한 일말의 기대를 가지고서 깊어가는 밤을 등지고 나는 오늘도 당신의 내면을 향해 물음을 던진다.